마음이 괴로울 때 법정스님의 책을 읽으면 영혼까지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방금 전까지 복잡했던 머릿 속이 맑은 시냇물로 씻은 듯 깨끗해진다. 이렇게 세상 원리가 단순하고 쉬운 것인가! 하고 감탄하게 된다. 물론 책을 덮은 후 다시 세상 속에 던져서 살아가다보면 어리석은 나로 돌아오게 된다. 인생의 진리를 찾기 위해서 이것 저것 다양한 경험을 하고 책을 읽었지만 내게 들려주는 교훈 한마디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이다. 이 한 문장을 읽고 내 삶을 돌아보면 난 한 번도 이 순간을 살아본 적이 없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이따가 어떤 일을 해야하고, 나중에 무엇을 해야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잠이 들 때에도 과거에 후회되는 일들을 회상하면서 가슴 아파고 속상해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머릿 속에서 다른 생각을 하기 일쑤이다. 내가 현재 느끼는 만지는 것을 진심을 다해서 해 본적이 있는가? 법정스님의 책을 읽고 나서 현재에 집중하고 진심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또 다짐하게 되었다.
이 책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법정스님이 오두막 집에서 살아가면서 만났던 계절의 순가을 기록한 글을 류시화 시인이 엮어서 만들어냈다. 류시화 작가는 마음과 영혼 관련된 주옥 같은 책을 우리들에게 많이 소개해주셨다. 그분의 책을 읽어본 것은 몇 권 안되지만 그분이 번역한 책은 수도없이 읽은 것 같다. 계절관련된 글이 시작될 때마다 류시화 시인이 법정 스님과 만나면서 느꼈던 단상들이 적혀있는데 이 글도 참 아름답고 가슴에 와 닿는 것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법정스님 책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태어나는 느낌을 또 받았다.
개울가에 산목련이 잔뜩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한 가지 꺾어 다 식탁 위에 놓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갓 피어나려고 하는 꽃이 게 차마 못할 일 같아서였다. 철따라 꽃이 피어나는 이 일은 얼마나 놀라운 질서인가. 그것은 생명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꽃이 피어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꽃의 정기를 머금고 있는 나무가 스스로의 충만한 삶을 안으로 안으로 다스리다가 더 견딜 수 없어 마침내 밖으로 터뜨리는 것이다.
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나? 꽃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본인을 향한 정기가 분출하면서 피어났다는 말이 너무 시적이고 아름답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우리의 정기를 피어내는 것일까?
어떤 자리에선가 스님은 여러 해를 날마다 똑같은 가르침을 듣 고, 단순하게 살면서, 우물가에 떨어진 국수 가락을 주워 먹으며 지낸 일들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배움이란 그런 것이리라. 빵을 굽듯이, 서서히 불길에 덥혀져 속 까지 잘 익혀지는 것. 거죽만 까맣게 그을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 속까지 고루 익는 것. 돌아보면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깨달음 속성반, 참나를 발견하 는 일주일 코스 등이 상상 밖의 비싼 값으로 거래되고 있다. 아쉽 게도 그런 유행에 휩쓸려, 스승 옆에 십 년 또는 이십 년 앉아 있 거나 부엌에서 일하는 것 따위는 구식이 되어 버렸다.
매순간 그분에게 주어진 일,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일이 그분에겐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순간에 그에게 주어진 일로부터 배움을 얻 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는 것이다. 스님의 살아 있는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분은 빵을 굽 는 불길과 같다. 그것이 어디서 오는 것이든, 스승은 불길과 같아 야 하리라. 설명과 이론으로 밀가루에 열기를 가하고 속까지 빵을 구울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출퇴근하며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랐다. 예전에 이런 쳇바퀴같은 삶을 왜 살아야하는지 의문이 들어서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자유자재로 사는 삶을 살았다. 지금에서야 조금씩 깨달아간다.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면서 얻어가는 것은 크다. 그것도 삶의 수행이리라. 매일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면 그 일을 어제보다 오늘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단순한 진리. 지금도 회사 가는 순간에 현타가 올 때도 있지만 매일 내가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여러 해 동안 법정 스님을 만나면서, 내가 발견한 그분의 가장 큰 특징이 그것이다. 그분은 언제 어디서나 '지금 이 순간'을 놓치 지 않는다. 대화의 주제가 과거의 일로 옮겨가다가도 스님은 문득 창호지에 비쳐드는 햇살, 너울거리는 파초잎, 노랗게 익어가는 모 과 열매를 손짓해 보인다. 그러면 둘러앉은 모든 이들이 일순간에 현재의 장소로 되돌아와 크게 심호흡을 하곤 한다. 어떤 일을 계획하는 사람이 찾아오면 스님은 말씀하신다. “ 인생은 과정이지 목표가 아니다. 다음 순간을 위해 이 순간을 희생하지 말라.” 지금 이 순간을 너의 인생의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다른 계획을 이루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를 들어 보라고 스님은 주문하신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에 사 는 것을 방해하는가를. 내가 초기의 여행에서 놓쳤던 중요한 부분도 그것이었다. 나는 여행의 매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어야 함을 어느날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내 여행은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 다. 여행뿐만 아니라 삶 또한 그렇지 않은가. 스님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놀라게 되는 것은, 그 분은 목적지로 가는 도중의 풍경을 세세히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다. 여행길에서 매순간 깨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함께 길을 걷다가도 스님은 자주 결유을 업주고 작은 사물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면 그 사물들이 빛을 발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류시화 시인이 법정스님을 만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을 글로 풀어놓은 것이다. 법정스님의 행동 하나 하나에는 이 순간을 살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그분의 행실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그 순간을 오롯이 느꼈나? 다음 끼니는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혹은 카메라에 사진을 담아내기 위해서 내 눈 앞에 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놓치지는 않았나. 앞으로의 여행은 순간 순간이 깨어있는 상태로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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