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닮은 사나이, 이방인
태양은 홀로 조용히 자신의몸을 뜨겁게 태운다. 고독한 싸움이지만 그 뜨거운 열정은 모든 세상을 뒤덮는다. 이 모습이 <이방인>의뫼르소를 닮았다.
짧은 문체와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생김새와 달리 굉장히 강렬하고 긴 울림으로 나의내면에 깊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형언하기 힘든 이 울림은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계속 지속되어 잔향으로남아있다. 아마 시간이 흐르고 다른 공간에서 이 책을 다시 펼쳐도 또 다른 울림과 잔향이 내게 전해지고, 머무를 것이다. 4년 전 아무도 만나지 않고 독서실에 갇혀서 공부하던시절에 우연히 두 이방인을 동시에 만났다. 그 당시 나는 이 세상에 혼자 떨어진 이방인이었다. 그때 감정은 외로웠고 황망했다.
두 이방인 중 하나인 뫼르소는 내게나처럼 외롭고 세상살이가 힘겨운 인물이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사람.그와 나를 일체화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상황에서 어찌할 바모르는 나와 달리 세상을 향해 담담한 태도를 지닌 채 살아간다. 나도 모든 것에 초연하려고 애썼다. 그는 그렇게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만난 또 다른 이방인은 바로김동률의 <이방인>이다. 제목과 가사는 물론이거니와 그 잔잔한 멜로디가 이루어져 카뮈 <이방인>을 함축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래 가사 중 '험한 세상 끝에서 숨이 끊어질 때, 그토록 찾아 해매 던 나의 머물곳이 너였음을' 에서는 카뮈의 <이방인>이 죽음을 앞 둔 순간에 느꼈던 감정과 생각이 맞아 떨어진다.
'처음으로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것을 느꼈다. 136p'
두 이방인은 결국 죽는 순간에 느끼는 생의 행복감을 찾아낸 것이다. 이를 통해 외로웠던 그 시절, 내 인생의 끝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주워졌으며 홀로 세상을 개척해야 한다는 동질감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만난뫼르소는 예전에 받아들였던 만큼 마냥 외로운 사람이 아니었다.나를 꼭 안아 주고 위로해주던 뫼르소는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제는 내가 그를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단편적인그의 행동에만 몰두 했던 때와는 달리 내면 깊숙이 들어가 그의 고독, 그를 둘러싼 세상이라는 무서운존재를 바라 볼 수 있었다. 뫼르소는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에서 나타내야 할 반응이 남들과다르다는 것, 누구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행동했다는 이유로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그를 그렇게 만든 세상은 너무 가혹했다. 그가 경험했던 세상, 내가 처음 책을 읽고 난 후 지내온 경험했던 세상이 맞물려 예전과 다른 시점으로 공감했다. 이번에는 뫼르소가 아닌 그 따스한 태양과 바다, 물 모든 자연이그와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가 자연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자연의 상태와 흐름에따라 자신의 감정에 영향이 미치는 과정이 보였다. 아름다운 현상이었다.세상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자아, 반대로 주체의식이 갖춰진 자아가 관찰하는 세상의 모습에여과없이 맑은 뫼르소의 영혼이 투영된다.
'햇볕에 진동하는 해변 전체가 내 뒤에서 죄어들고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69p'
그는 햇빛, 바다, 별빛, 하늘, 비, 구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여 표출했다. 우리는 결국 대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것이 느껴졌다.
몇몇 서평을 보았더니 첫페이지에서 시작하는 문장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를 제일중요한 문장으로 손꼽는 것 같다. 그러나 내게 눈길이 가는 문장은 '그것은제 탓이 아닙니다. 9p’ 이다. 이 문장이야말로 뫼르소의수동적인 성격과 타인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내용을 내포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마리와뫼르소의 관계에서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생각해보았다.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없는 말이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마리는슬픈 표정을 지었다. 44p'
뫼르소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른다. 아니 정말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걸까. 마리에 대한 답변이 무지답답했지만 분명히 그녀에게는 좋은 감정이 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를 못 찾았을뿐이었겠지. 그녀에 대한 수많은 감정을 단 세 단어로 다 표현할 수는 없을 테니깐.
그는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닌 어수룩한 면모가 있고, 절대적으로 호불호가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다.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문지기가 준 밀크 커피를 마시면서그는 '또 밀크 커피를 마셨는데 매우 맛이 좋았다. 18p' 라고생각하며, 회사 사장이 파리 지사로 가는 것은 어떻게냐고 권유받는 상황에서도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했다. 곰곰 생각해봐도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51p' 와 같은 행동은 기쁜 건 기쁘다고, 맛있는 건맛있다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극적이고 조심스럽지만 진실된 사람. 카뮈가 서문으로 남긴 말을보면서 희미하게 느껴졌던 주인공의 성격과 특징을 단번에 정리할 수 있었다. 태양을 사랑한 사나이, 세상을 향한 태도는 소극적이었지만 누구보다 진실한 삶을 살았고, 그진실을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뜨거운 영혼의 소유자, 뫼르소. 그가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지 않아야 하며, 태양이조용히 이글이글 자신의 빛을 달구듯이 묵묵히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는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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