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

스탈당 <적과 흑>

라샐리 2014. 6. 1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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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 1

저자
스탕달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03-0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쥘리앵 소렐은 베리에르의 목재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마을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암흑 속에서 발견한 사과 한 알


사과는 달콤한 열매인 동시에 누군가에게 미안한 감정을 전달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빨갛고 알이 꽉 찬 사과는 사랑에 빠진 한 여인의 볼과도 닮았다. 사과를 떠올리면 애정, 죄, 생명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난 이 책을 다 읽고 쥘리앵 손 위에 올려진 사과 한 알이 떠올랐다. 내 마음대로 적과 흑을 해석하자면 '적'은 빠알간 사과(사랑)를, '흑'은 주인공의 어두운 마음과 인생을 상징한다. 그 당시 프랑스 사회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 소설을 사회학적 관계도를 생각하며 읽기는 어려웠다. 내게 이 책은 현실적인 로맨스 소설로 다가왔다. 인생사의 최대 고민 중 하나, 사랑. 연애의 고수 스탈당이 써 내려간 주인공들의 섬세한 심리를 보며 나의 연애를 돌아보는 동시에 과연 이들의 사랑이 진실한 사랑인지, 당대 최고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집중하게 됐다.

"이 여자는 이제 나를 업신여길 수 없을 테지. 그렇다면 이 여자의 아름다움을 즐겨야지. 이 여자의 애인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의무야. 124p"


스탈당은 200년도 내다볼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요즘 연애 트렌드처럼 책의 주인공들은 10살 연상연하 커플이다. 쥘리앵은 여자의 마음을 이용하여 자신의 출세에 대한 야망을 펼쳐 보고자 한다. 젊고 영리했으며 잘생기기까지 한 그는 여자 앞에서는 풋사과일 뿐이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그녀의 아름다운 목선과 눈빛을 보면 마음이 녹아버려 사악한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이 남자를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안절부절 못하고 어리숙한 그의 행동 때문이다. 챕터마다 무수히 많은 감정이 혼재한다. 행동 하나 몸짓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고, 생각이 바뀌고 변심한다. 자아와 또 다른 자아가 만나 자존심과 이상향이 충돌한다. 사랑은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든다. 내가 그들과 정말 연애를 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복잡한 감정이 내 마음과 머릿속을 뒤엉켰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사랑하는 대상을 정의하기는 힘들다.


"행복이 그토록 내 곁에 가까이 있는 걸까? ... 이렇게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 그러나 경사가 심한 산을 오른 나그네만이 그 꼭대기에 앉아 쉬는 완전한 기쁨을 맛본다. 242p"


책의 결말을 보면 인생에 있어서 성공과 명예는 전부가 아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 닥친 결말은 고통과 참회의 순간이 수반된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니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 쥘리앵은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항상 가까이 있었던 베날 부인만이 그의 행복과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인생의 목적은 사랑이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사랑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과정이 된다. 너무 큰 배신감을 느껴, 즉흥적으로 죽이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진실한 사랑이라고 느낀 것 인가. 너무나 사랑해서 보이지 않는 믿음에 반한 배신에 대한 증오인가. 그 증오에 대한 그림자는 다시 진실한 사랑을 불러 일으키는 가. 증오와 사랑은 뗄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똑같이 두 여인을 미래의 야망 때문에 사랑했다. 하지만 왜 죽음 앞에서는 베날 부인을 진실로 사랑한다고 느낀 것일까? 의문이 증폭되었다. 우연히 들은 팟캐스트에서 그 답을 찾게 되었다.


철학가 강신주는 "진실된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김수영 시인의 <죄와 벌>이라는 시를 예로 든다. 이 시는 제일 가깝지만 미운 아내를 길바닥에서 때리고 있었는데, 주위 취객이 몰려들어서 제대로 때리지 못하고 돌아와 버린다. 아내에 대한 어떤 감정보다 주위를 의식했기 때문에 ‘제대로’ 때리지 못한 것이다. 그는 그 만큼 아내에 대한 감정이 주변인들보다 못했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라는 시구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를 증오한 사람만이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온전히 둘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우리를 둘러싼 주위 시선, 배경, 경제적인 조건 등이 사과를 반으로 쪼개듯이 사랑을 거룩하게 이루는 것을 방해한다. 사랑하는 척은 해도 정말로 사랑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내가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나의 죽음을 슬퍼할 유일한 사람일거야. 420p"


쥘리앵도 베날 부인을 죽일 정도로 증오하는 마음이 불탔고, 살인까지 시도했지만, 살아있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죽기 전까지 미친듯이 그녀만을 사랑한다. 가장 사랑하는 적인 것이다. 목이 잘려 나가기 전에 그는 칠흙같이 어두웠던 인생 속에서 겨우 행복이라는 사과를 찾고이 세상을 떠났다.  베날 부인도 마찬가지로 쥘리앵의 죽은 소식을 듣고 그를 따라간다. 그들은 어떤 누구보다도 진정한 사랑을 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눈을 감기 전에 온전히 둘에 집중할 수 있는 진실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외 발췌


아이들만큼 나비를 따라 뛰어다니는 것을  즐거워하며 진정 어린아이처럼 살고 있었다.

그렇게 제약받고 능란한 책략을 구사하던 생활을 하다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져 혼자 있게 되자 

그는 본능적으로 레날 부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산악지방에서 

그 또래들이 생생하게 느끼는 존재의 기쁨에 몸을 맡겼던 것이다. 82p 


자기 행동의 유일한 지침이며 열정의 대상인 책을 가지고 그 낭떠러지를 찾곤 했다. 낙담의 순간, 그는 책 속에서 

행복과 황홀, 위안을 동시에 찾아내곤 했다. 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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